LETTER
#01. 우리가 교환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뭘까요.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이제 본격 여름입니다. 장마도 지나고 있고요. 장마가 지나면 나무와 숲도 더 초록초록 짙어지겠죠. 사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었는데 책방을 하면서는 책방에 물이 샐까, 습습한 공기에 책이 쭈글거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네요. 8~90년대 편지처럼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봤습니다. 헤헤.
우리가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으니까 아사장님이 “우리도 그런 거 합시다, 교환일기”라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요. 진짜 이렇게 쓰네요. 펜팔 기분도 나도 새롭습니다. 이 레터를 함께 받는 구독자분들은 아마 펜팔이라는 단어가 낯설겠죠.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당연한 시대니까요. 우리 때는 월간잡지 맨 뒤에 펜팔친구 찾는 칸이 따로 있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소와 연락처와 이름을 다 공개하고 펜팔친구를 찾았다는 게 이상하네요.
아사장님을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여름이었지만 실제로 만난 건 2021년 봄이었지요. 책방에 몰래 들르셨다가 이름 때문에 정체를 들켰습니다. 쉽게 숨겨질 이름이 아니잖아요. 하하. 이후로 몇몇 행사에서 만나면서 교류가 잦아졌지요. 아시겠지만 전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낯 가리는 아니 사람을 가리는 INTJ 입니다. 행사장에서 몇 번 만났다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람은 아니에요.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레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나와 아사장님 모두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극제를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찾아요. 이를테면 책 읽기와 글쓰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 각종 이벤트와 일거리를 만들죠.
지난번 만났을 때 『지루함의 심리학(제임스 댄커트, 존 D. 이스트우드, 비잉)』을 읽고 있다며 "지루하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는 상태”이며, “우리 마음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됐다고 알려주는 신호”라고 했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래서 난 외로움이나 권태감을 느끼거나 바쁘게 무언가를 하지만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이유가 이거구나, 했어요. 지루함이란 할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느끼는 게으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으름이나 무기력함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 아름다움처럼 지루함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니 지루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겠더라고요. 아마 아사장님과 전 지루함을 비슷한 이유로 느끼고 비슷한 방법으로 빠져나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루함의 심리학』이 궁금해져 요즘 이 책을 읽고 있어요. 고대부터 지루함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니 놀랍더라고요. 유희나 유흥의 문화와 함께 자랐을 것 같은 지루함이 삶의 유의미와 『안나 카레리나』에 등장하는 “지루함은 욕망에 대한 욕망”처럼 “욕망을 바라는 탓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동요하는 상태”라니. “지루함은 행동하라는 요구이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신호”였던 거예요. 이제껏 내 몸과 마음에 오는 신호를 일차원적인 감정이라 생각하고 지난 게 아주 많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살면서 많은 고뇌와 고통과 실패와 좌절과 불안과 막막함을 비켜 갈 수 없잖아요. 지루함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 오겠죠. 비켜 갈 수 있다면 혹은 도망 갈 수 있다면 그러하겠지만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인생은 참 재미있어요. 재밌는 일 많이 하고 삽시다. 그중 읽고 쓰는 일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 이유 중 하나겠네요.
아사장님이 인스타그램에 소개하거나 리뷰를 올리는 책을 보고 어리둥절 내지는 난 저 책은 못 읽겠군, 하는 책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 읽기와 글쓰기 생활에 관해 교환편지를 쓸 때 우리가 과연? 의문을 가졌지만 그래서 재밌을 것도 같아요. 요즘은 <내가 만난 사람들(가제)> 원고 마감에 읽기보다 쓰기에 집중하고 있으실 테죠. 전 써야 할 게 많을 때 좋은 책이 더 잘 보이고 더 잘 읽히더라고요. 급박한(?) 상황에서의 읽기는 정말 최선으로 골라 읽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또 다른 쓰기 꺼리를 안겨드리면서 마칩니다.
구선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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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구선아 작가님께
라고 시작하고 싶지만 ‘친애하는’이라는 말은 정말 오글거리네요. 땅 밑으로 침잠하는 기분입니다. (참고로 ‘침잠’ 역시 제가 매우 오글거려 하는 단어 중 대표 격입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셨듯 우리의 낯 가리는 성향상 서로 이렇게 자주 연락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한다는 건 서로에게도 드문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도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굳이 안 맞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는 일에 너무 지쳤거든요. 이건 우리 사이에 뭔가 공통적인 성향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네요.
첫 레터이니 가볍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너무 빡세게(?) 책 이야기를 하셨네요. 그래서 저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교환 편지를 시작하기로 하고,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생각해봤습니다. 작가님은 모르는 저만 아는 비공식 첫 만남이었죠. 편지에서 언급하신 책, <내가 만난 사람들(가제)>에 자세히 써놨기 때문에 여기서는 쓰지 않으려고요, 고소미 먹을 거 같아서요 (웃음). 여하튼 저는 요즘 작가님의 누리호 같은 추진 에너지에 놀라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주고 받는 레터의 목적은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고 여건이 된다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 있지요. 그래서 저의 고민 아닌 고민을 잠깐 털어놓겠습니다. 우리가 속한 책 시장은 상당히 희한합니다. 많이 팔리는 책 중에서 소설이나 에세이도 있긴 하지만 의외로 문학이라는 장르는 소규모 시장이라는 걸, 책방을 하며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동네 책방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문학 장르를 선호합니다. 이게 착시 효과인데, 마치 키즈 카페에 가면 넘쳐나는 애들을 보며 ‘아니 애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저출산이라는 거야?’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네 책방에서 꽤 반응이 있는 책이 전체 시장에서 거의 반응이 없는 경우도 빈번한 것이지요.
저는 사실 주로 읽는 장르가 없습니다. 이건 장, 단점이 분명한 사안인데 장점이야 두루두루 읽는다는 것이겠고 단점은 하나의 장르에 전문적이지 못 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책방을 시작할 때 2.5초 정도 찰나의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근데 문학을 많이 취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에이. 뭐 이 작은 책방에 책 사러 많이 오겠어?’ 하고요. 이 고민은 지금도 가끔 하는데 제가 잘 모르는 작가에 대해서 물어보는 손님들을 만나면 심화됩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작가를 다 알 수는 없잖아요. 전 지금 제 사촌동생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상태인데 말이에요. 4년 정도의 시간동안 꽤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중간 결론은 동네 책방은 모든 것을 다룰 필요 없다는 겁니다. 저도 책 욕심이 누구보다 많기 때문에 초반에는 진짜 all 장르를 다 갖추고 있었지요. 하지만 4년 전에 들여놓은 경제서를 아무도 안 사가는 걸 보면서 그쪽 장르는 여러 권 사지 않고 제가 읽을 책만 사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어떠세요?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나요? 아! 공통점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작가님도 로베르트 발저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고 그의 산문집,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한겨레출판사)』를 읽은 것으로 압니다. 이 책이 호불호가 갈리는 책인데도 작가님이 『산책자』를 꽤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친근감을 더 느끼게 되었지요. 그래서 진짜 좋아하는 작가 베스트 3은 누구입니까? (박훌륭 미리 제외!!)
저는 요즘 마감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4년간 가장 많은 마감이 눈 앞에 있는 때입니다. 이 “책방 운영자의 사생활” 6월 레터를 끝내고 나니 7월부턴 교환 레터를 시작하게 되어서 참말로 즐겁습니다잉. 그래서 지금 시각, 정확히 밤 11시 24분인데, 책방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노트북을 집으로 가져와서 이걸 쓰고 있습니다. 아, 알아달라는 거 맞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지난달에 5일간의 서울 국제 도서전이 끝나고 도서전을 즐기고 오신 분들의 소감이 SNS에 많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걸 보며 한동안 책 소개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막 읽은 책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청림출판)』이거든요. 제목부터 재미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많이 지르고(?) 오신 분들에게 또 책 소개를 하자니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여하튼 복합적인 감정이 드네요. 책을 팔아야 하는 운명이지만 또 독자의 입장에서 부담을 주고는 싶지 않은.
저 책을 완전히 끝내고 나면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원철, 불광출판사)』를 마무리 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잔잔하고 조용히 나 자신과 대화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음, 뭐랄까. 월간 잡지인 『좋은 생각』 비슷한 결의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큰 글자 책으로도 나오니까 부모님들께 선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일반본으로 한 번 읽어보시면 마음의 평화가 ‘잠깐’ 올 거에요. 하지만 얼마나 오래 갈 지는 작가님에게 달렸습니다. 훗.
그럼 다음 레터를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11시 32분이네요.
박훌륭 드림
언어는 세월이 지나며 어떻데 다듬어져야 할까? 신조어들은 왜 나타나고 후대에는 어떻게 갈무리 될까? 스탠퍼드대 언어학박사인 최혜원 교수가 쉽게 설명한 한글 이론과 재미있는 사례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언어와 유희들을 알아보자. 여러분 ‘보라해~!’.
3년 전 아독방 서평단 평가도 좋았고, 구매한 분들의 평가도 좋았던 책이지만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 2022년, ‘가스 라이팅’이라는 말은 많이 알려졌지만 이 책은 그 단어가 아닌 ‘정서적 학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심리 치료사인 에이버리 닐은 그 학대의 패턴과 특징을 자세히 알려주고 도저히 발전 가능성이 없는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을 아끼는 법을 알려준다. 신체적이든 정서적이든 학대를 일삼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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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친애하는 대신 무언가 다른 말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전까진 친애하는으로 시작해야겠어요.
지난 편지를 받고 내내 우리의 비공식적 만남을 생각 해내 보려 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연희에서의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니었다니. 흠칫. 책방을 운영하고 글을 쓰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왠지 내가 학교 매점 언니 같다는 생각이요.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나는 모르는데 나를 아는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내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책방을 찾은 손님 중 한 명이 2년 전 어디에서 저를 봤다며 반갑게 이야기하시는데 순간 당황했습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답장이 늦은 건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는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조금 핑계고요. 열흘 정도 마음을 써서 일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었어요. 불행만 한꺼번에 오는 게 아니라 일도 글쓰기도 책 읽기도 한꺼번에 오나 봅니다.
질문으로 돌아가면 전 장르보단 한 권의 책이 중요합니다. “책방 운영자의 사생활” 마지막 레터에서 문학보단 비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중엔 단편소설을 좋아하고 비문학에선 인문학, 사회학, 예술서를 좋아한다고 밝혔죠. 그런데 사실 장르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 생활과 글쓰기에 찌릿 틈을 만들어내는 책을 좋아하고 어떤 주제나 키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거든요.
가령 아시는 것처럼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한겨레출판사)』를 좋아합니다. 로베르트 발저를 좋아한다기보다 『산책자』를 좋아해요. 처음엔 제목에 제가 좋아하는 ‘산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골랐고 몇 장 읽으니 좋아하는 단어들이 온통 빛을 내고 있더군요. 읽은 장소도 정확히 기억납니다.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이었어요. 책방을 연 해였고, 도서관 탐방 에세이를 연재하던 때였습니다. 연재를 핑계 삼아 서울 곳곳의 특별한 도서관을 찾아 아침부터 저녁 남짓까지 머물렀고요. 그때 읽은 책이에요. 다음날 책을 주문해 책방에도 들였고요.
아! 이 책 배수아 님이 번역했어요. 아사장님도 배수아 님 좋아하시는 거로 추측합니다만 맞나요? 훗, 저희의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했네요. 그때 메모해 둔 수첩을 찾아보니 “소위 지나간 아름다움이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매혹시킨다. 폐허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고귀함의 잔해 앞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의 내면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를 처음으로 메모해두었네요. 제가 시간이 오래 지난 것, 낡은 것, 특히 고대 유적이나 근대 도시 흔적을 좋아하는 것과 연결되는 문장이에요. 그리고 이 문장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도 형광펜으로 표기도 되어 있어요. 개인과 타인에 관해서는 따로 쓸 이야기가 많아 오늘은 접어두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장 “내 이름은 프리츠. 혹시 이름이 달랐다면 내 인생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적어두고 제 인생에 대한 넋두리를 써놨네요. 아마 아사장님은 이름이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다를까요? 지난번 마포에서 식사 예약 때 썼던 박훈영이었다면요? 헤헤.
요즘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김광기, 김영사)』를 조금씩 읽고 있어요. 제가 또 '이방인'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이 책의 명제인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라는 말에 매우 동의하거든요. 제 글 쓰는 작업에도 도움이 되는 책이고요. 그 외엔 책방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모임 가을학기 때 읽을 책을 선정하느라 예술가들의 책을 살피고 있어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다시 말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작가 베스트 3’이 누구냐는 질문이 너무 어려워요. 없기도 하고 너무 많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순위와 관계없이 꼽아 볼게요. (미리 박훌륭 작가를 제외해주셔서 조금 마음이 가볍습니다) 조지오웰,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 파트리크 쥐스킨트, 움베르토 에코 좋아하고, 한 사람으로서 관심 있는 작가는 이상, 나혜석, 버지니아 울프, 프랑수아즈 사강이 바로 고민 없이 떠오르네요. 지금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중에도 몇 생각나지만, 이 부분은 차차 이야기 나눠요. 직접 만나고 와, 생각이 멋지다 했던 작가는 김종광 작가와 문정희 시인이었다는 것 정도만 밝힙니다.
참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원철, 불광출판사)』를 읽고 인스타그램에 소개하신 거 봤어요. 아마 전 그 책은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는 필요한 때인 건 확실해요. 하지만 잔잔하고 조용히가 아니라 막 시끄럽게 떠들고 싶은 날씨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책방 하반기 계획도 그렇고 좀 마음이 소란스럽네요. 일단 저도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인터뷰집이 마무리되면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다녀오겠습니다.
루이스 캐럴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 좋아해요!) 독서는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책으로 연결되어 편지를 나누기도 하고 백 년 전 쓴 글로 인해 오늘이 두근두근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다음 편지를 기다릴게요.
구선아 드림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이운진 / 아트북스 / 2022.6.15. / 예술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 2019.9.02. / 세계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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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나는 충분히 혼자가 아니다
구선아 작가님께
저는 방금 이금희 아나운서와 유튜브 촬영을 끝냈습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인 「마이 금희」인데요. 7월부터 동네 서점을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금희 아나운서도 책을 사랑하고 오래 읽은 분이라 책 추천 해달라는 말씀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무사히 촬영을 끝냈습니다.
이 모든 건 “이름” 탓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들(꿈꾸는인생)』에도 썼듯, 타인이 나를 부를 때 특별한 포인트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삶에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지난 편지에서 제 이름이 박훌륭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상황들이 떠오르네요. 우선 지금보단 좀 더 일탈 하고 살았을 것 같은데... 이름이 박훌륭이 아닌 박훈영이 하는 아독방은 지금이랑 똑같을까? 『이름들』을 쓰지 못 했을 거고 주문을 하며 내 이름이 손님들 뇌리에 박힐 리도 없고 그럼 아독방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특이한 이름 덕에 지금 현 상태가 만들어졌다면 그 이름이 아니라 저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로 다른 상황이 만들어져도 재밌었을 거에요. 어쨌든 유전적 성향이 있으니 재밌게 열심히 하는 건 바뀌지 않겠네요.
유전적 영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틈틈이 『양육 가설(주디스 리치 해리스, 이김)』을 읽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양육 가설’을 다루는 책인데 우리, 부모들이 늘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탐구서입니다. 68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라 한 방에 읽을 수가 없어서 마음의 벽돌이네요. 가슴 한 켠이 묵직해요.
과연 아이에게 부모의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쉽게 이야기 해서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을 뜻하는 양육 가설에 대한 비판 연구입니다. 양육 “가설” 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저 주장 자체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죠. 책 초반에 예전 유럽 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유럽에는 유모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죠. 그래서 귀족들의 아이들은 주로 유모가 키우고 심지어 일정 기간동안 부모를 못 만나는 아이들이 다수였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생 정도? 충격적인 건 그 아이들이 자라서 처음 부모를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은 유모가 아닌 부모의 스타일을 닮아있더랍니다. 그럼 양육이 완전 무용하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믿고 있는 부모 양육의 중요성, 느끼고 있는 죄책감을 내려 놓을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를 근거와 함께 말해줍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커피숍입니다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 뒤통수에서 어머님 2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 자녀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한 어머니가 상해에서 유학한 이야기와 학원 이야기, 양육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하고 있고 한 어머니는 “어, 응. 아~, 헉, 그래! 하하하.”만 거의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진짜 농담 아니고 30분 넘었습니다. 와, 저 어머니는 어찌 저리 에너지가 넘칠까요? 전 이미 귀에서 피가 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우리 한국 사회 양육의 에너지일까요.
전 정말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 시간에 깊은 생각을 하고 정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릅니다. 물론 에너지도 채우고요. 그래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에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자발적 고독과 외로움을 겸비한 고독의 장인 로베르트 발저. 고독으로부터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들이 저를 빠져들게 했지요. 작가님과 저는 좋아하는 책 장르가 다른데도 은근히 겹치는 부분들이 많네요. 신기합니다. 작가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나요? 혼자 있는 시간에 영감이 떠오르고 에너지를 채우나요? 아님 친구라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에너지를 얻는 타입인가요? 아, 다행입니다. 저 어머니들이 가신답니다... 아니네요. 다른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혼자가 아닙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우리’가 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책이 없었다면 제가 책방을 열지도 않았을 거고, 책방을 통해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 했을 겁니다. 이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네요. 망해도 같이 망..?? 아닙니다. 망할 일은 없을 거예요. 이 레터를 읽으시고 당연히 책 주문도 하실 테니까요. 강요는 아닙니다. 권유일 뿐이에요.
다시 귀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 레터를 얼른 끝 맺고 나가야 할 것 같네요. 셰인 오마라의 『걷기의 세계(미래의창)』에 대해서도 좀 쓰려고 했는데. 일단 제가 먼저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다음 레터에 다시 이야기해요, 작가님.
박훌륭 드림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 배수아 / 테오리아 / 2022.05 (개정판) / 단편소설집
아직 배수아 작가의 글과 친해지지 못한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기존 단편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영국식 뒷마당>에 <부엉이에게 울음을>을 추가하여 나온 개정증보판이다. 추가된 <부엉이에게 울음을>이 다른 해에 쓰였음에도 앞의 2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우러지며, 짧은 분량임에도 ‘여성의 일평생’을 함축하는 에너지를 보여 상당히 흥미롭다. 독특한 표지와 더불어 전체 책 디자인은 ‘2021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권’ 선정 도서를 디자인하기도 한 이기준 디자이너가 맡았다.
이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 마누엘 푸익 / 문학동네 / 2016.08 / 소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인 마누엘 푸익의 책. 민음사에서 나온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시도했던 대화체 플로우의 끝을 보여준다. 380페이지 내외의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 ”를 사용한 대화체로 글을 이어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책방 운영자의 사생활』 레터의 <One eruo dive>에 같은 시도를 해보았다.) 74세의 병든 망명자 라미레스와 사회 부적응자이며 하루하루 근근이 생활하는 시간제 노인 요양사 36세 래리의 대화 속에 수많은 밀당이 존재한다. 이것은 심리 게임인가 인생인가? 집중하라. 이게 라미레스가 한 말인지 래리가 한 말인지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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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새로운 세계는 오늘도 예고없이.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와, 이금희 아나운서와의 촬영이라니. 거의 셀럽 일정으로 살고 계신데요? 방송촬영과 라디오, 유튜브 촬영까지. 그 여파로 책방에도 손님이 많아져 책도 많이 데려가길 바라봅니다. 물론 방송에서의 노출이 책방 매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요. (웃음)
오늘은 아침부터 도서관에 왔어요. 9시 30분쯤 왔는데도 앉을 좌석 찾기가 힘들더군요. 지금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편지를 쓰고 있어요. 전 밀린 일이나 개인 작업을 할 때 동네 카페 몇 곳을 그날의 기분에 따라가곤 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집에서 작업하고 또 하루에서 이틀은 도서관에 가고요. 문보영 시인이 『일기시대(민음사)』에 썼듯이 “외로움을 지키기 위해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에 가죠.
지난 편지에서 물으셨죠. 혼자가 있는 시간이 좋은지,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좋은지요. 둘 다 좋기도 하고 둘 다 싫기도 합니다. 둘 다 필요하기도 하고 둘 다 쓸모없기도 하고요. 다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을 땐 책방에 갑니다. 또는 책방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다행히도 저에겐, 아니 우리에겐 책방이라는 연결된 공간이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영감이 떠오르고 에너지를 채우는 건 무언가 읽거나 보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입니다. 아시겠지만 저 역시도 불편하거나 불쾌하거나 제 기분이나 체력이 소비되는 듯한 사람과는 만나지 않아요. 퇴사 이후 책방을 운영하고 글을 쓰면서요. 돌이켜보면 정말 나를 소비하며 버린 시간이 너무 많거든요.
참, 도서관에 와서 『양육 가설(주디스 리치 해리스, 이김)』를 찾았습니다. 와, 그런데 이 책 글씨도 작고 빼곡한 688쪽의 벽돌 책이더군요. (편지에 680쪽이 넘는다고 쓰여있지만 무심코 넘겼습니다) 벽돌 책은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니고서는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최근 읽은 벽돌 책은 『진리의 발견(마리아 포보바, 다른)』을 읽고 싶은 챕터만 골라 읽었죠. 하지만 『양육 가설』은 부제가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라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문과 목차를 보니 구매하여 천천히 읽어도 좋은 책이 분명하더군요.
저희의 공통점 중 또 하나는 육아 중이란 거죠. 사회가, 부모가 만든 삶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기대 혹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에는 반대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살면서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아이가 유전적 기질과 선천적 영향이 매우 큰 것도 또는 양육 환경과 방식이 중요하다는 말도 조금 두려운 일입니다. 특히 요즘 태풍이가 쓰는 단어가 매우 늘고 모방력과 인지력도 빠르게 늘고 있거든요. 지난번에 메시지로 이야기할 때 아이가 태어나고는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죠. 할 수 없어도 해야 하고 몰라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인생은 계획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중 제일이 육아인 것 같아요.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지 않으니까요. 김연수 작가가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지가 뜯겨 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에 썼죠. 요즘은 자주 정답지 없는 아주 두꺼운 문제집을 푸는 느낌이에요.
태풍이는 저에게 매일 예고 없이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거든요. 일단 제가 이런 책을 읽고 있잖아요? 하하. 그리고 오은영 박사의 책도 이미 몇 권 읽었어요. 제 책장 서가 한 칸은 육아 서적인걸요. 조금 전 책에서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또래 집단과 함께 자기 삶을 만들어 나간다’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각이 멈추네요. 현재 한국 사회의 또래 집단은 사는 곳, 다니는 학교와 학원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부모의 영향 아래 놓이는 거죠. 아마 이 책을 다 읽어도 저의 두려움은 사라지진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읽어볼게요.
참, 얼마 전 문보영 시인을 만났어요. 아마 제가 시집은 잘 안 읽는다는 걸 아실 텐데요. 앞으로 시를 읽을 때 다른 시선으로 읽게 될 것 같아요. 문보영 시인 덕분에요. 이번 주에 문보영 시인 북토크가 아독방에서 열린다죠? 가보고 싶은데 토요일은 제가 책방 근무해야 해서 아쉬워요.
이번 주에 몇 권의 책을 읽으려 빼 두었는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 편지에 마감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셨죠? 지금은 모두 마감을 마친 상태로 알고 있어요. (부럽) 전 이번 여름이 마감의 계절이어요. 요즘은 올해 출간할 인터뷰집 본문을 마감하고 서문을 쓰고 있어요.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책 전체 중 서문이 좋은 책을 발견하잖아요. 저도 욕심을 내어서인지 글쓰기 진도가 안 나가요. 꽉 막힌 고속도로 같아요. 운동할 때뿐만이 아니라 글을 쓸 때도 힘을 빼야 하는데 벌써 힘이 들어간 거죠. 그래서 이 교환편지가 재밌습니다. 힘을 쫙 빼고 써서인지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어서요. 요즘 저의 글쓰기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저도 알아달라고요. (웃음)
앗, 전 이만 태풍이 퇴근 시간이 되어 편지를 끝맺습니다. 다른 글쓰기 일은 다음 편지에 또 이야기해요. 이런, 뛰어가야겠네요.
구선아 드림
LETTER
#06.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
질투나는 구선아 작가님께
제가 편지에 유튜브 이야기를 썼는데 드디어 지난주에 올라왔습니다.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네요. 영상 편집이라는 게 해보니까 포인트 잡기 만만치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더라고요.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차분한 본 모습(?)이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훗)
이번 작가님의 편지에서 매우, 아주, 퍽, 꽤나 제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구내 식당”입니다. 저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구내 식당 마니아입니다! 아마 요즘에도 아독방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구내 식당 식판 사진을 가끔 보셨을 거에요. 어딜 가든 구내 식당이 있으면 무조건 가서 먹어봅니다. 그 우아하게 각 잡힌 식판에 나오는, 어딜 가나 반찬 수마저 똑같은, 근심과 걱정 없는 구내 식당이라는 유니버스! 너무 설렙니다. 이건 제가 서울에서 홀로 자취 할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인데요. 혼자 있으니 밥을 해 먹을 생각은 어불성설상가상이고요. 당연히 사 먹었습니다. 이 행위는 주말에 특히 도드라지는데요. 주말마다 저는 구내 식당을 찾아다녔습니다. 특히 제가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가까운 곳에 살 때는 아파트형 공장이라 불리는 대형 건물들의 모든 구내 식당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품평회까지 열 지경이었죠. 어디는 ‘가스가스’류 (돈가스, 생선가스 등)가 자주 나오고, 어디는 후식이 항상 추가로 나오고 (식혜, 아이스크림, 후르츠 칵테일 등), 어디는 찜닭이나 제육 같은 뭔가 양념 된 메인 메뉴가 많이 나온다는 걸 웬만하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구내 식당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격과 영양과 맛의 삼권 분립이 확실하다는 거겠죠. 마치 손님과 책과 책방운영자의 균형이 맞는 책방 같아요. 아무렴요, 영양사가 상주하여 균형 잡힌 식단이 나오고 맛도 꽤 괜찮으며 재료 대량 구매에 따른 주변 식당보다 저렴한 식대! 완벽합니다. 아무 생각할 필요 없어요. 구내 식당이 보이면 그냥 들어가세요. 『탑건』의 매버릭처럼 그냥 행동하세요.
구내 식당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흥분했네요. 저는 방금까지 『미니언즈』를 보고 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작품 선정일까요? 긴 말 않겠습니다. 제가 근 5~6년간 영화관에 딱 4번 갔는데 그 중 2번은 『뽀로로』 시리즈, 1번은 『미니언즈』, 한 번은 『탑건』을 봤습니다. 그 중에 3번은 최근 3주 안에 본 것입니다. 작가님, 눈 한 번 감아보세요. 깜깜하죠? 그것이 작가님 육아에 펼쳐질 미래입니다. (함박웃음)
이제 수습을 좀 해야겠습니다. 육아가 깜깜한 길이긴 하지만 아이가 웃을 때마다,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리 위에서 가로등이 켜질 겁니다. 얼마나 운치 있어요? 없다고요? 맞아요. 더불어 잠도 없습니다. 그냥 계속 가로등 언제 켜질까 기도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육퇴(육아 퇴근) 후에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대체 산티아고 순례길을 왜 가요?” 라고 이야기 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음. 왜 육아가 이런 느낌일까요? 전 산티아고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냥 ‘느낌 아니까~ ♪’. 대체 그렇게 힘들다는데 아기는 왜 가지는 거야? 왜 힘들대놓고 둘째를 또 낳아? 그냥 그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처럼 산티아고 갔다와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에요. (정효정 작가님이 쓴 『남자 찾아 산티아고』는 재미있었습니다. 뜬금 추천,)
그렇지만 아이로 인해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지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이건 염승숙 작가님이 쓴 소설집의 제목인데 허락 안 받고 씁니다. 제가 늘 추천하는 소설집인데, 여기 수록된 소설을 들여다 보면 정말 세상과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염승숙 작가님의 소설 톤은 전체적으로 발랄하진 않습니다. (+)와 (–)로 나누자면 오히려 (–) 쪽에 가깝지요. 물론 한강 작가님만큼은 아닙니다. 사실 세상이 그렇지요. 어디 늘 발랄하고 행복한가요? 지금 앞에서 웃고 있는 저 사람도 지금 잠깐 웃은 거지 하루 종일 찡그리거나 힘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한 취준생이 점심 시간에 밖에 나가보니 온통 밝게 웃으며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직장인들뿐이어서 너무 부러웠대요. 그런데 본인이 취직하고 회사를 다녀보니 딱 그 시간에만 웃었던 거였다고... 농담... 이겠죠? 진담인가? 뭐 여하튼 그런 전체적인 (-) 기조 안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기도 하구요. 왜 갑자기 사색적이죠?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었네요.
아! 깜빡하고 왜 ‘질투나는’ 구선아 작가님께라고 썼는지 말씀을 안 드리고 지나갈 뻔 했네요. 요즘 <책방 연희>에서 엄청 많은 클래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걸 보고 부러워서 하는 말이에요. 저흰 아독방 4주면 기념으로 매주 작가님을 초대하여 “매주 아독방”을 진행하는데 정해놓은 인원이 안 차서 애써 시간 내어 오시는 작가님들께 좀 부끄럽습니다. 하필이면 아독방이 8월에 시작하는 바람에 기념일마다 휴가철이랑 완전 겹쳐 버렸다고 위로를 해보지만 책방으로서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북토크는 다시는 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함박웃음)
네, 물론 농담이고요. 저는 작가님들께 죄송한 거 빼고는 1명만 오시더라도 좋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저와 좋아하는 작가가 비슷하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뽕(?)이 차오릅니다. 언급하신 이번 주 문보영 작가님 북토크부터 시작해서 윤고은&염승숙 작가님, 정한아 작가님까지 잘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출근해야겠어요. 다음 편지에서 더 수다 떨어볼게요! (우리 이렇게 퇴청하는 컨셉 잡은 거죠?)
박훌륭 드림
LETTER
#07.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이제야 비가 지나갔어요. 아독방의 비 피해는 모두 복구가 되었나요? 우주 방어급으로 물이 안 새게 해두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았는지요. 연희는 이번엔 다행히 비 피해가 없었지만, 지하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서교동의 경우 고지대이고 책방 건물도 높은 지대에 있으나 작년 장마에 비 피해를 보았죠. 아,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네요. 제가 책방에서 출판사 대표님과 회의 중이었는데 한쪽 벽과 바닥 틈에서 물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그걸 업무 협약한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 차 들리셨다가 먼저 발견하셨어요. “대표님, 여기 바닥만 코팅한 건 아니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이번 비는 기후변화와 주거형태, 환경시설물을 포함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어요. 물론 저뿐만이 아니었겠죠. 특히 일주일 넘게 계속 반지하 거주공간이 이슈잖아요. 저도 십 오 년 전쯤 반지하에 산 적이 있었어요. 1년 정도였죠. 대학원을 졸업하고 막 직장에 입사했을 때였어요.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그 월급으론 번듯한 오피스텔에서 살긴 힘들더라고요. 도심 야경이 보이는 그런 곳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월세, 관리비, 교통비, 통신비, 생활비, 때때로 집에 돈이 들어가는 일도 생기고. 어른인 척 살아야 하는 때가 오니 돈이 꽤 들더라고요. 어차피 집은 잠만 자던 시기라 비싼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왔는데 부엌 싱크대 수도관이 터져 부엌과 방에 물이 찼어요. 물 높이가 5cm 정도나 되었을까요. 그날 서러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곤 바로 이사했어요. 동네를 떠나진 못했어요. 구옥 이층집에 방 두 칸에 부엌과 작은 베란다가 있는 곳으로요. (이 이야긴 [그래서, 서울] 청량리 편에 조금 썼습니다). 이후 열심히 벌고 모아 지금은 모자랄 것 없는 아파트에 삽니다. 기특하죠? (웃음)
아사장님은 관심 있는 어떤 특정 공간이 있나요? 어떤 이유로든요. 아무래도 저와 공통된 하나는 ‘책방’이겠죠. 그 외에 전 미술관과 놀이터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요. 좋아하는 곳은 지난 편지에 밝혔듯이 카페와 도서관이에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인지, 건축을 전공해서인지, 제가 ‘집’에 관심이 많아요. 책 중에 ‘집’ 관련 책도 책방에 많이 입고되어 있죠. 참으로 이 집이란 게 웃겨요. 이전에는 집이라는 단어가 다정한 단어로 여겨졌어요. 사진집 [윤미네 집]이나 그림책 [만희네 집] 같은 책의 느낌요. 그런데 최근엔 경제용어로 느껴져요. 집이 투자의 대상이 되었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몇 년 사이 부쩍 집을 ‘재산’으로 먼저 보는 경향이 커졌어요. 집으로 경제적 계급을 나타내면서도 문화적, 사회적 계층을 구분해요. 그리고 요즘은 집으로 학군도 나누고 친구도 나누잖아요. 집에 관한 기억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관련한 책으로는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집의 기억을 꺼내 집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제일 먼저 생각나고요. 청년 세대의 돈과 집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도 생각나요. 서울에 부모님의 집이 없다면, 대부분 가난한 자취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하죠. 이미 거기에서 청년 계급이 갈린다고 하잖아요. 일단 생활비가 안 들고 어쩌면 증여나 유산으로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서 집이 가난, 빈곤과 같은 키워드와도 만나게 되죠. 출발선은 평등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이런 말들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경제적인 걸 포함하여 평등한 무엇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등은 도덕적 선이 아니다”며 빈곤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평등은 없다]도 읽어 볼 만합니다. 이 세 권의 책 중 감히 추측해보자면 아사장님은 마지막 책을 가장 호기심 어리게 읽으실 것 같아요. (웃음) 저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집과 관련한 이야기도 써보고 싶네요. 에세이든, 소설이든요. 개인의 역사가 한 동네나 도시의 역사가 되기도 하니까요. 재밌을 거 같아요.
참, 앞선 편지에서 저를 질투한다고 하셨는데요. 결코 전혀 저를 질투하지 않아도 됩니다. 엄청 많은 클래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희는 커피를 판매하지도 않고 굿즈도 없고 월간 책 구독서비스도 없어요. 모처에 잘 나가는(?) 서점들에 비교하면 요즘 정말 하찮은 매출이라 속상한 수준이고요. (울상) 어떤 모임이든 기획하고 참가자를 모으고 운영하는 일이 만만치 않잖아요. 많은 책방 운영자가 저와 같은 마음이겠지만, 모객 할 땐 항상 조마조마해요.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으면 어쩌지? 모객이 안되면 어쩌지? 하고요. 그래도 모임이나 클래스를 열심히 만드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물론 책방 수익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사 다니며 한 일이 기획하는 일이라 자연스러운 일이고 재미있어요.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요. 기회는 어깨에 힘 빼고 “그냥 한 번 해볼까?” 해야 오잖아요. 조금 욕심을 부려본다면 사람들이 책방의 읽고 쓰는 모임을 통해 책을 더 많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고요. 이런저런 마음으로 꾸리고 있어요.
반대로 전 아사장님이 질투 납니다. 독자들과 손님들과 다른 작가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게 부러워요. 물론 저의 다정하지 못한 성격 탓이 큽니다. (제가 인정은 빨라요) 종종 아사장님은 I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MBTI 검사를 다시 해보시길 권해 봅니다. 아무래도 E인 것 같거든요. 분명 저랑 같은 I일 리가 없어요! 아, MBTI가 별자리에서 기원한 건 아시죠? 사장님은 황소자리네요. (제가 별자리 운세를 보고 있었어요. 헤헤) 황소자리는 흔히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온화한 면이 많다고 해요. 다툼이나 쓸데없는 충돌은 좋아하지 않고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한데, 맞나요? 혹시 MBTI 검사 다시 하시면 결과 꼭 알려주세요.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책으로부터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이 편지가 도착하는 날, 우리 점심 약속이 있네요. 그러면 곧 만나요. 만나서 책 이야기를 이어가 봐요. 책방의 지난한 일들 말고요. (웃음)
구선아 드림
LETTER
#08.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친애하는 구선아 작가님께
한 주 잘 보내셨는지요? 작가님 몸이 안 좋았다는 소식은 들었고 그 후 한 차례 미팅도 했는데 안부를 물으려니 어색하네요. 저는 책방 천장에 워터파크가 개장하는 바람에 안전 요원으로 10일 정도 근무했습니다. 비가 새서 옆에 서서 울고 있었단 이야기지요. 덕분에 8월 13일과 20일에 윤고은&염승숙 작가님과 정한아 작가님을 만나지 못 했습니다. 작가님들과 신청자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레터(#07)는 왜 작정하고 쓰신 것 같지요? 예상컨대 작가님이 평소에 관심이 있는 기후와 공간에 관한 이야기라 신나서 쓰신 것 같아요. 오늘따라 더 멋져 보이시네요. 이렇게 잔잔하고 조용하게 취향을 전하는 저는 MBTI상, I입니다. E라니요. E상하네요. 사실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둘 사이에 애매하지만 I는 변한 적 없습니다. INFJ냐 INFP냐의 차이일 뿐.
MBTI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에 『우리는 모두 조금은 이상한 것을 믿는다』를 읽었습니다. 《SKEPTIC》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글자 그대로 “회의주의 Skepticism”를 표방합니다. 아, 아, 모두들 몸서리치는 소리가 들리네요. 그 회의가 아닙니다. 그냥 자꾸 의심한다는 의미겠지요. 특히 과학이나 지식에 관해서요. 이 잡지는 아독방을 시작하고 초창기엔 가끔 읽었는데 요즘엔 거의 못 읽었습니다. 현세에서 의심할 일이 많이 생겨서 잡지마저 의심하며 읽을 여력이 없네요.
MBTI를 사실 ‘진짜’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재미의 일환으로 서로 해보고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일 뿐. “나는 MBTI 같은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해버린다면 갑분싸(아시죠?) 되는 거죠. 그래서 다른 내용보다 저는 최근 심리학에서 성격을 정의하는데 쓰는 5가지 요소가 흥미로웠습니다. 그 5요소는 바로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원만성, 신경증 (정서적 불안 정성) 이라고 합니다. 이 5가지 요소들은 총 합 100% 안에서 분배되는 것이 아닌, 각각의 개별적 특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외향적이라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신경증이 높아서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와 같은 걱정이 들 수도 있는 거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로 반려견을 들었네요. 호기심은 강한데 겁이 많아서 쉽게 다가가지 못 하고 ‘언제나 제자리 걸음~♬’ 한다고요. 저는 금동이가 떠오르네요.
MBTI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격에 관심이 많았던 캐서린 쿡 브릭스 Katharine Cook Briggs 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Isabel Briggs Myers 가 융의 심리학 이론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 해서 저처럼 금동이와 피규어 상황극 엄청 하다가 둘이서 연습한 뮤지컬 무대를 유튜브로 생중계 하게 된 거죠.
이 책에는 말씀하신 별자리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첫 줄에 무슨 문장이 나오냐 하면, “당신의 성욕은 별자리에 좌우된다.” 네?? 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책을 후다닥 덮어버렸네? 심지어 카페에서 혼자 앉아있었는데 왜 덮은 걸까요? 습관은 무서운 겁니다. 이 정도면 읽고 싶어질 독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낚시대를 드리워 봅니다.
참, 작가님은 공간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건축 전공도 전공이지만 원래 전공은 더욱 대차게 하기 싫은 법인데 (ex. 약사) 꾸준히 관심을 가지시는 것 보면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나중엔 정말 복합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분으로 거듭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잘 보여야 월세 좀 싸게 주실 거란 생각도요. (웃음)
저는 ‘공간’이라고 하면 그냥 비어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늘 이야기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 빼고 아무 것도 없어야 안정이 됩니다. (ex. 호텔) 예전에 방송인 서장훈씨와 허지웅씨가 한창 비교될 때가 있었죠. 둘 다 깔끔의 대명사 격인데 차이가 있다고요. 서장훈씨는 치우고 청소를 하긴 하지만 그게 귀찮아서 본인의 집에 웬만하면 뭘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고 허지웅씨는 뭐가 엄청 많은데 청소도 많이 하는 타입이었죠. 저는 서장훈씨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청소를 하진 않습니다. 이미 정리를 하기엔 몇 시간으로는 되지 않을 아수라장이니까요.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저자)나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저자)의 권유는 다음 생에 해보기로 합니다.
작가님은 최근에 8월 마감인 인터뷰집을 마무리 하셨다던데 유명 작가들만 인터뷰 했다고 하셔서 기대가 됩니다. (함박웃음🤩) 저는 이번 주 토요일에 경북 금호 도서관으로 강연을 갑니다. 이제 시작이네요. 내용이 제 이야기 위주라서 왕자병이라는 소릴 들을 것 같긴 하지만 모두에게 재미있는 강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단 자차로 이동을 해야해서 거의 한 적 없는 장거리 운전이 걱정이에요. 도착해서 바로 강연장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8월엔 참 일이 많네요. 아독방 생일부터, 워터파크 개장, 오랜만에 즐겁게(?) 영화도 보고, 장거리 운전 등등.
8월도 잘 마무리 하시고 9월에 다시 만나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우린 또 나이를 먹으리라.
박훌륭 드림
LETTER
#09. 게으른 마음, 부지런한 계절 .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가을입니다. 잠깐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여름은 부지런히 가고 가을이 부지런히 왔네요. 오늘은 얇은 긴 팔을 꺼내 입었어요. 다행히 전 컨디션은 좀 좋아졌습니다. 대신 목과 허리에 담이 왔어요. 목은 아무래도 노트북 작업 시간이 늘어난 여름이어서 그렇고, 허리는 태풍이를 빠르게 들어 올리다 삐끗했어요. 태풍이는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계절이 되어서 마냥 신난 모양입니다.
지난주엔 사장님이 기대(?)하시는 인터뷰집 마감을 했고 (야호!!) 이번 주엔 앤솔러지 마감이 있습니다. 초고는 무척 빨리 썼는데 수정을 못 하고 있는 상태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주제인가 봐요. 좋아하는 소설가가 함께 필진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신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내일은 라디오 생방송이 있습니다. 편지가 도착하는 내일부터 3주에 한 번씩 KBS 1Radio 97.3MHz(수도권 기준)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동네책방’ 코너에서 책 소개를 하게 되었어요. 15분 이내의 짧은 시간이지만 생방송이라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약국에서 라디오를 계속 들으신다고 하니, 꼭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갑자기 무척 떨리고 있거든요.
그래도 일단 모든 걸 미뤄놓고 편지를 씁니다. 저에겐 이 편지가 다른 마감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거든요. (저 잘하고 있나요? 훗) 참, 지난 토요일 도서관 강연은 어떠셨나요? 장거리 운전 괜찮았나요? 강연 간 김에 여행도 하고 오신 거로 알아요. 포항과 경주 근처였지요? 저 경주 정말 좋아하거든요. 전 토요일에 책방에서 행사가 많았어요. 오전 10시 반에 출근하여 오후 8시가 다 되어 퇴근했습니다. 배도 안 고프더라고요.
음, 올여름엔 책을 꽤 많이 읽었어요. 책이란 게 많이 읽으면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바쁠 때 더 읽고 싶은 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고요. 전 맥락적 읽기를 즐기는데요. 책 속에 나온 책을 이어서 읽거나 비슷한 주제나, 동일한 작가의 책을 읽어요. 아마 눈치를 채셨을 테지만 책 편식도 조금 있어요. 그래서 아사장님이 추천하는 책 중에 처음 보는 책도 많아요. 다행인 건 최근 북큐레이션 강의나 기업이나 기관에 특정 주제의 큐레이션을 종종 하게 되어 골고루 살피고 있습니다. 9월부턴 매월 마케팅, 브랜딩, 리더십, 경제경영, 자기계발서도 골라 모기업 임원분들께 추천하게 되었어요. 아, 정말 이런 분야의 책들, 회사 다닐 때 많이 사고 많이 봤었는데 오랜만에 열심히 챙겨 읽게 되었네요. 이 기회에 책방도 저도 공부하고 책 편식도 탈출해보렵니다. 탈출... 할 수 있겠죠? (웃음)
참, 지난 편지에 소개한 김경욱 작가의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을 곧 읽으려고 챙겨뒀어요. 오래전에 『동화처럼』과 『소년은 늙지 않는다』를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소설은 챙겨서 읽지는 않는데 한 번 읽으면 여러 권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예전에는 “왜 소설을 읽어? 비효율적이야!”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점점 ‘소설은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전 편지에서 제가 소개했던 『기후 변화의 시대의 사랑』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어요. 거창하게 소설이 사회에 도덕적 교훈이나 주제의식을 주고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한다는 것 말고요. 물론 정서적 공감이나 예술적 쾌락, 시간 순삭의 재미도 필요하고요. 그 힘은 회복의 힘이기도 하고 살아내는 힘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승우 소설가의 글을 빌려오면 “소설은 가장 먼저 그 글을 쓴 작가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하다.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견딜 힘을 얻는다. 세상의 불합리와 파렴치와 몰인정을 이길 힘을 얻는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많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을 회복하고 힘을 얻는 작가도 많은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최근 많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네요. 일명 힐링소설이라 불리는 소설들요. 특정 공간을 주요 키워드로 한 게 많아 초기엔 환호했는데. 지난 편지에 쓰신 것처럼 전 공간 이야기할 때 약간 신나거든요. 그런데 이젠 요런 소설은 너무 많아요. 잘 골라 읽으려고요. 아마 웹으로 먼저 공개하고 책이 출간되는 이유도 있겠고, 어렵고 무거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도 있겠고, 몇 개의 소설이 잭폿처럼 터진 이유도 있겠죠. 한 장르의 책과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그 장르도 커지고 독자도 유입되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책방을 운영하고 책을 소개하는 입장에선 비슷한 장르와 비슷한 분위기 책을 계속 소개하고 읽기 힘든 게 가장 커요. 독자이기 이전에 유통자고 큐레이터이기도 하니까요.
편지를 마무리하려 했는데,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올랐습니다. 아사장님이 안 읽는 책 분야는 뭔가요? 오늘은 이렇게 편지를 질문으로 끝맺을게요. 그럼 다음 편지 기다립니다.
구선아 드림
LETTER
#10. 우리에게도 제철은 있다 .
질투나는 구선아 작가님께
또 다시 질투를 부르는 계절입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점심 사러 나갔다 오니 그냥 여름이네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라디오 고정을 맡으시다니 너무 부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도 라디오 고정하고 싶어요. 라디오를 그렇게 많이 듣는데 저는 아무래도 청취자만 할 운명인가봅니다. (함박웃음)
오늘은 오전에 밀린 강의 계획서를 쓰고 오후엔 금동이 픽업 전까지 포도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자타공인 과일 마니아라서 안 좋아하는 과일이 없을 지경이에요. (두리 먹으면 두리 죽는 두리안 제외) 그 연장선 상에서 지금 아독방에서는 초희 자두 증정 이벤트를 하고 있어요. 제가 우연히 소개로 먹어본 자두인데 ‘초희’ 자두는 자두 중에서 가장 늦게 수확하는 만생종이래요.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수확하고 크기도 크고 단단한 과육 특성상 저장에도 용이하다고 합니다. 맛있는 거 먹었으니 제 주변 사람들에게 먹여봐야(?) 직성이 풀리는 관계로 자두를 9월 굿즈로 내걸었습니다. 우리도 제철 과일을 먹다 보면 제철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철 과일을 먹다보니 생각나는 책이 있는데, 바로 『맛의 배신』입니다. 부제가 〈우리는 언제부터 단짠단짠에 열광하기 시작했을까?〉인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제철’에 대한 그리고 오리지널 음식에 대한 욕구가 막 올라옵니다. 저는 치킨을 즐겨 먹습니다만 슈퍼 닭 키우기 대회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목표하는 크기로 양산화 된 닭들의 비밀을 알고 나니 우리가 ‘즐겨 먹는’ 것 중에서 제대로 된 건 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혹시 순살 치킨에 많이 쓰는 브라질 닭 아시나요? 포털에 한 번 검색해보시면 아주 늠름하고 필라테스 20년은 한 것 같은 자세를 한 닭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순살 치킨에 쓰는 닭은 이건 아닌데 이 닭이라고 하며 많이들 웃곤 했죠. 그래서 살이 많았구나... 하고요.
『맛의 배신』을 보면 우리가 음식에 대한 자제력이 약한 게 아니라 식품에서도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진정한 맛을 잊어버리고 자극에만 예민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내 탓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배가 부르다는 감정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먹는 데에 집중하게 되고 꼭 나중에, “아 배불러.” , “별로 안 먹은 거 같은데 왜 이러지?”, “토할 것 같아.”, “다시는 이렇게 안 먹어야지.” 등의 오토매틱 현실 도피 언어를 뱉은 다음 또 그러곤 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읽어보시면 답을 알게 되실 거에요.
이 문제 관련해서 생각나는 책이 또 있는데요 실비아 타라의 『팻』입니다. 나는 물만 먹어도 살쪄,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죠? 물을 얼마나 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겁니다. 실비아 타라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도 다른 사람처럼 살이 빠지지 않는 자신을 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 지방(fat)에 관한 모든 걸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지방에 대한 모든 것과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가지고 환경에 대한 엄청난 적응력을 보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에 축복받은 능력이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운동을 늘 하는 사람이 1kg를 빼려면 운동량을 엄청나게 늘려야 합니다. 한번 운동을 시작한 사람의 몸에는(실제로는 뇌) 이미 그의 운동량과 패턴이 각인 되었기 때문이죠. 고로 어찌 보면 평생 과격한 운동을 안 하고 산책 정도의 운동량을 유지하고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 지방과 절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지도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약국 안 책방’에서 가끔 운동을 합니다. 손가락만 많이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근력을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젠 나이를 먹으니 누가 제 옆에서 “하나 더.”, “하나만 더!” 외치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피트니스 센터도 다닐 수가 없어요. 제가 운동을 하는 목적은 명확한데요. 곱게 늙기 위해서, 금동이가 초등학생일 때도 거뜬히 들고 업고 메고 치고(?) 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금동이의 몸무게에 초점을 맞춘 운동을 주로 합니다. 예를 들어 데드리프트는 금동이가 땅바닥에서 잠들었을 때 들어올리기 위해서고요. 스쿼트는 그 후 금동이를 들고 곧게 서기 위해서입니다. 잡기 좋은 바벨이나 덤벨이 아니라 사람을 들고 업고 하려면 그보다 최소 1.5~2 배는 무거운 무게를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금동아 고.맙.다.
아유 쓸 데 없는 이야기를 엄청 했네요. 이렇게 지면이 때워지다니 너무 즐겁습니다. (함박웃음) 라디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금희 아나운서께서 곧 책을 내신다고 합니다. 팬으로서 너무 기대하는 중이고요. 친필 사인본을 받으려고 미리 말씀을 드려놨습니다. 저, 이금희 아나운서님이랑 카톡하는 사이에요. (웃음) 저는 「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 날」에 한 번 출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어쨌든 라디오 고정은 작가님이 선배님이니 많은 다리 놔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참, 지난주 토요일에 경북 영천까지 왕복 운전 12시간을 하고나니 오른쪽 다리만 커진 느낌이라서 이번 주는 운동을 쉬어야겠어요. 이 나이에 무리하면 안 되잖아요. (함박웃음) 이제 곧 추석 연휴가 다가오네요. 다들 맛있는 거 많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만 운동 안 하고 배 나오면 억울하니까요. (함박웃음2) 모두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제철 인간이 되어봅시다!
그럼 추석 연휴 잘 보내신 후에 제가 안 읽는 내용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요.
박훌륭 드림
표선생의 소설 『죄와 벌』을 바스티앙 루키아의 재해석을 통해 압축한 그래픽 노블. 실제 주인공들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모두 나오지만 바스티앙 루키아가 그리는 주인공의 표정과 주변인들의 행동, 감정, 얼굴 등은 그만의 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 모두는 소설을 읽으며 각자의 해성과 상상을 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무언가를 얻곤 한다.
『죄와 벌』을 읽은 여러분은, 사회악을 없애버린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하지 못 하는 걸 해줘서 조금이라도 고마움이 생기는가, 아니면 살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절대 악인가? 나아가서 사회악인 연쇄살인범의 사형은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더 나아가서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를 똑같이 구타해서 제지한 남자의 행동은 용서 받을 만한가, 아니면 폭력은 받아들일 수 없는가? 바스티앙 루키아와 ‘솔직한’ 생각을 나눠보자.
소설가 염승숙의 시작. 염승숭 작가는 2005년 「뱀꼬리왕쥐」를 통해서 등단했다. 현재는 현실과 가장 맞닿은 소설을 쓰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의 시작은 ‘환상’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소설집은 「뱀꼬리왕쥐」를 포함해, 환상이라는 말은 상상이 모이고 모여 ‘환’을 이룬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있다.
누군가가 ‘여봇씨오’라고 부르면 절대 돌아보지 마라. 하지만 돌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세상을 채플린처럼 등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지도 모르니까. 이 소설집을 덮을 즈음, 그래도 아직 희망이라는 단어가 우리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절판되기 전에 얼른 읽어봐야 하는 소설집.
*이번주는 구간 책을 두 권 추천했습니다!!
LETTER
#11. 우린 모두 다른 하늘색을 봅니다 .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전 연휴에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정주행하고 영화 <모가디슈>와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읽었어요. 사실 말 못 할 일들도 많았습니다만, 그게 어디 저뿐이겠어요. (웃음)
일단 지난 편지를 받자마자 아사장님의 라디오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이번 편지가 도착한 날 방송이겠네요. 와우! 역시 바라면 이루어지는 걸까요? 그렇다면 전, 잠시 편지를 멈추고 기도 좀 하고 오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께 말이죠. 책방도 저도 무척이나 희미한 상태고 고난한 일도 많거든요.
전 준비하던 인터뷰집을 지난주 '정말' 마감했습니다. 아마 오늘 열심히 인쇄기가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사실 인터뷰는 제가 논문 쓸 때 취하는 연구 방법이고 외주 프로젝트로도 꾸준히 해오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단행본을 쓰려니 여간 신경 쓸 일이 많은 게 아니더군요. 섭외가 가장 어려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인터뷰이가 모두 다른 생각으로 참여한다는 게 가장 어려워요. 가령 “와, 하늘이 파랗다”라고 할 때 모두 같은 파란색을 떠올릴 수 없잖아요. 물론 비슷한 색상이겠지만, 말 그대로 ‘비슷’하다고 추측하는 것이지 똑같지 않죠. 더군다나 누군가는 “하늘은 원래 파래. 회색 구름이 가득 차도 하늘이 파란 건 변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우린 모두 다른 하늘, 아니 다른 하늘색을 보는 것과 같죠. 아무튼 책은 9월 마지막 주에 나올 것 같아요. 10월엔 우리 같이 이 책과 이 편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요. (후훗)
우리의 편지도 벌써 #11 이에요. 시작할 때 시즌1 목표가 #30 이었는데 가능하겠죠? 누군가는 우리의 편지를 받고 편지 속 책을 사고 읽고 관심을 가지겠지요? 요즘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책을 파는 일에 관해 자주 생각합니다. 책방에서 제가 메모를 붙여둔 책이나 인스타그램에 리뷰를 쓴 책에 손님들의 손길 눈길이 더 많이 가는 걸 보면, 아무리 작은 책방이라도 책방을 운영한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작은 책방의 매력이자 문제는 운영자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는 거니까요. 전 아무래도 책을 파는 것보단 읽는 것에 더 적성이 맞는 듯하지만요. (눈물)
참, 지난 편지는 제 얘길 쓰신 줄 알았습니다. 40대가 되면서 물만 먹어도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아, 솔직해지라고요? 맞아요, 먹긴 먹었습니다. 특히 전 맥주를 좋아해요. (웃음) 그리고 봄에 다니던 요가도 그만두었어요. 저랑 맞지 않더라고요. 일단 제 몸은 글렀습니다. 쓰레기 수준이더라고요. 학창 시절엔 운동회 때마다 계주 선수로 뛰었었는데 이젠 계단 몇 개만 올라도 숨이 차거든요. (함박웃음)
물론 저도 13㎏의 태풍이를 안고 들고 같이 뜁니다. 태풍이가 학교에 갔을 때도 같이 뛰어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땐 꾸준히 하던 수영을 다시 해볼까 해요. 아직 등록은 못 했지만요. (저 할 수 있겠죠?) 조금 위안이 되는 건 전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운동을 하면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질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아사장님은 술도 마시지 않고 운동도 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이번 주부터 책방에선 새로운 주제의 큐레이션 전시가 연달아 진행돼요. 9월 16일부터 25일은 ‘청년의 날’을 기념하여 청년을 위한 인문도서 20권을 선보입니다. 이미 입고된 책도 궁금했던 책도 처음 알게 된 책도 있어요. 그중엔 책방에서 2021년 베스트 도서로 뽑았고 독서모임도 진행했던 『사이보그가 되다』가 있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있는 『공정하다는 착각』과 궁금했던 기후 문제를 다룬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 책은 제목만 봐도 읽어보고 싶지 않나요? 부제는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하다’더라고요. 제 주위엔 멍청이가 많지‘는’ 않습니다. 물론 없다는 말은 아니고요. (웃음)
아, 책은 제가 선정한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선정한 <청년의 날 추천도서>여요. 몇 번째 편지였던가요. 작은 책방을 하면 문학 분야 책이 주류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고 하셨죠. 전 지금 출판시장이나 언론에서 청년 세대가 책을 안 읽는다고 말하는 것도 착시효과 같아요. 어려운 책, 두꺼운 책, 고전 책이 아니라 읽는 책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책방엔 젊은 세대가 많이 오고 온라인 리딩 플랫폼도 젊은 세대가 많이 소비하잖아요. 요즘 논란되는 문해력의 문제도 젊은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책을 많이 읽는단 말은 아닙니다. 사실 누구라도 책을 많이 읽어주고 사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전 추석이라는 명절만 없다면 9월을 가장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날씨도 좋고 계절이 주는 마음도 좋고 더군다나 제 생일도 있거든요. 편지를 받으시는 내일이 제 생일입니다. 한때는 생일주간이라고 하여 흥청망청 술자리를 연달아 갖던 때가 있었는데요. 이제는 다 부질없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죠. 이젠 생일을 보통의 날처럼 보냅니다. 내일도 마찬가지고요. 선택하지 못하는 일보단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을 더 특별하다고 여기고 살려고요. 그래서 전 다음 아사장님 편지는 여행지에서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얏호!!
구선아 드림
제목을 보고 전혀 어떤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흥미를 끌었어요. 산업으로서의 국가 간 입양으로 덴마크로 입양된 여자의 이야기인데요. 국가 간 입양이 이익추구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이상화 하는 것도, 수월한 입양을 위해 고아 호적으로 만드는 것도, 생년월일을 다르게 기재하는 것도, 국가와 인종과 그리고 계급 간의 불합리와 불균형도 모두 놀라울 따름 입니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국가, 인종, 부모. 그 때문에 그 여자는 그리고 우리는 화가 나야 합니다.
요즘 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만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청소년, 청소년을 지난 성인, 청소년이 가까이 있는 어른 누구나 대상이 됩니다. 그중 최근 본 책중 이 책 너무 좋더라고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미 유명한 책인데요. 정말 아이들의 모습이 눈부십니다. 아마 등장하는 여러 아이 중 한 명에게서 자신을 만나게 될 겁니다. 13살 아이들의 수영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 만나게 될 세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LETTER
#12. 지옥이란 무엇일까 .
질투나는 구선아 작가님께
또 질투를 불러 일으키시는군요? 여행이라니 여행이라니!! 물론 태풍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제 경우를 비춰 보건대 쉽지는 않겠네요. 하지만 갓 블레스 유! (여담이지만 인친 중에 아이디를 ‘블레스유’로 쓰는 분이 있습니다.)
참 희한한 게, 뭔가를 연결하려고 하면 다 연결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작가님이 여행을 가신다는 편지를 받고, 질투가 났고, 저도 여행가고 싶단 생각을 했고, 일은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책을 집어들고, 주말 육아를 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는데... 읽었는데!! 간접 지옥을 맛 보았습니다.
가스파르 코에닉이 쓴 『지옥』이란 소설을 읽고 나니 지금 내가 사실은 천국에 살고 있는 건가, 진짜 지옥은 어디일까? 등의 웬만하면 하지 않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등의 나쁜 짓은 하지 않은 경제학 교수입니다. 그는 성실히 삶을 이어나갔고 꽤 평범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으로 판단되는 곳에 입성하게 되죠.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각 잡힌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반갑게 맞이하며 한도 무한대의 신용카드를 건네줍니다. (와... 이것까지 질투나네요.) 그는 의아했지만 평소에 못 입어보던 비싼 옷을 사고 가고 싶었던 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퍼스트 클래스를 끊어서요!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했지만 그 공항은 출구가 없었어요. 아무리 둘러보고 화장실까지 들어가보지만 출구가 없어요! 그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로 또 여행을 갑니다. 또 옷을 사고, 먹고, 마사지 받고 비행기를 또 타요.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마사지 받고 싶은 것(??) 등의 욕망을 억누르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에게 이젠 모두 해보라며 되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행을 가지 않으면, 즉 탑승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부 면세 구역 안에 있는 거죠! 이승에서는 일하느라 멀리 여행 갈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저승에 와서야 꿈에 그리던 여행을 하나 싶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일까요? 그는 뭘 그리 잘못 했길래 이 지옥에서 멀끔히 돌아다니는 걸까요.
표지는 아주 발랄하게 그려놨는데 철학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작가님이 여행가신다는 거에 부럽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읽은 책이라 아주 당황스럽습니다. 심지어 저는 주말에 올해 들어서 가장 힘든 체험을 하고 온 뒤라 더욱 저는 타이밍의 사나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네요. (으하하)
일요일에는 금동이와 ‘농부 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가기 전에는 몰랐어요. 이 프로그램이 무려 3시간 30분짜리라는 걸요. 그리고 참고로 그날 날씨가 한여름이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꽃 설명 듣고 꽃 따고, 풀 설명 듣고 풀 따고, 브라질 닭 같이 생긴 토종닭과 토끼 설명 듣고 밥 주고 닭장에 들어가서 계란을 가지고 나오는 등 1시간 30분을 들판과 산을 돌아다니고요. 호박이랑 부추 같이 썰고, 밀가루 반죽하고, 꽃 전 부치고, 목화 솜 넣은 인형 만들고, 무지하게 더운데 뜨거운 꽃차 마시고 등등. 전 여름도 아닌 가을에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근데 바깥은 그렇다 치고, 진짜로 농부님들 요새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실내에서 이렇게 일 하시나요? 정말 구시렁 댈 기운도 없더군요. 참, 저희 옆에 앉아있던 7살 남자 아이의 아버지는 반바지를 입은 덕에 14군데 모기에게 헌혈을 했습니다. 다음에 이런 체험을 할 때는 모기장이라도 둘러쓰고 가야겠어요. (참, 다시는 안 갈 거지?) 이런 체험 후 금동이는 집에 오면서 “덥기만 했다.”는 시니컬한 총평을 내 놓으면서 저에게 정신적 카운터 펀치마저 날렸습니다.
자, 이제 『지옥』의 주인공과 저는 누가 더 지옥에 있는 겁니까? (으하하) 농담이고요. 우리는 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지옥’이라는 곳을 떠올리며 얼마나 자신을 옥죄고 있는 걸까요? 나는 틀렸으니 내 자식이나 후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대승적인 도덕 관념이 나를 지치게 하고 있진 않을까요? 나쁜 짓을 하며 살자는 건 아니고요.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어렴풋이라도 알아야 중간을 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 수 없다면 삶의 기준은 자신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휴, 진지해보려고 엄청 노력했네요. 여하튼 지옥같은 (발음 주의) 건 생각하지 맙시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 행복하다와 불행하다의 명확한 ‘끝’이 없어서 우리 삶은 더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이 다이내믹한 아이와의 삶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글로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보여주려고요. 아무도 모르는 건데 작가님께 처음 이야기 해요. 아! 이제 몇백 명은 알게 되는 건가요? (으하하)
편지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 편지를 받을 때쯤 작가님은 천국에 계시겠지요. 이 편지는 마포구 공덕동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7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300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으하하)
건투를 빕니다! 우리에게 딱 맞는 행운의 편지와 함께!
박훌륭 드림
우린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옥’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각자에게 지옥의 이미지와 의미는 모두 다르다. 누구에게는 현재가 벗어나고픈 지옥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설사 이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위해 기꺼이 그걸 감수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현재가 너무 만족스러워 혹시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면 어쩌나 걱정한다. 하지만 지옥은 마음속에 있는 것.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지옥”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삶을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이치은 작가는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꾸준히 독자들의 능동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작품을 썼다. 『키브라, 기억의 원점』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의 두 가지가 교차되는 전개를 보인다. 바로 진짜 기억과 가짜 기억, 그리고 과거와 미래이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채 눈을 뜬 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인을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당위성에 다다른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일지 모르는 행적을 추적하며 점차 자신에게 다가간다. 추리 소설의 전개를 따르지만 추리 소설은 아닌 사고의 확장성이 가득한 소설이다. 나는 내 과거의 어디까지를 기억하며 그 기억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번 편지는 신간과 구간 모두 소설입니다
LETTER
#13. 나를 회복하는 일 .
친애하는 아사장님께
행운의 편지라니. 어렸을 때 정말 행운의 편지가 유행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집 우편함에 여러 통 도착해 있거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상 서랍에 끼워져 있던 기억이 있네요. 학창 시절을 떠올리니 정말 아득합니다. 아마 행운의 편지를 모르시는 분도 많으실 거예요. 펜팔을 아는 세대가 행운의 편지도 알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지난 편지에서 소개해주신 『지옥』 흥미롭네요. 끝없는 여행, 도착지 없는 방랑이 지옥이라니. 아무래도 끝이 있는 삶을 사랑하라, 는 의미겠지요? 얼마 전까지 ‘이생망’이라는 말을 많이 썼잖아요. 다음 생이 있으리라 믿어서 쓰는 말은 아니겠지만, 참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요즘 ‘회사는 전쟁터,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도 씁니다. 이건 요즘이 아니군요, 제가 퇴사할 때도 들었던 말이니.
전 실체가 없는 지옥을 만드는 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타인, 그리고 나. 이렇게 말하니 세상 모든 것 같네요. 조금 더 설명하면 타인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나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은 내가 노력하면 조금은 변할 수 있으니까요. 삶은 곧 지옥일까요? 그만큼 삶이 고단하다는 말이겠지요. (인스타그램 속엔 행복한 삶만 있지만요) 그리고 지옥을 생각하니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지옥과 죽음 모두 산 사람들이 만든 이미지인데 이를 깨는 책으로 보입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둘게요.
절 부러워하셨던 여행은 책을 마감하고 떠난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바다의 너울을 처음 본 태풍이가 아직도 하루에 열 번 넘게 “바다 집” “파도 넘실넘실 챠~”를 말하고 있어요. 바다에 있는 집에 가서 넘실넘실 챠~ 하는 파도를 보고 싶다는 말이에요. 진짜 태풍이 제주도를 지나는 날엔 아주 높은 파도를 봤어요. 저와 태풍이는 모든 감각을 열고 그 파도를 마주했고요. 그리고 『그래서, 강원』에 등장한 양양 죽도해변과 인구해변도 들렀고, 사람들이 모르는 숨은 맛집도 찾았습니다.
제일 좋았던건 제가 좋아하는 낙산사에서 반나절을 보낸 시간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국내 장소 중 베스트 5에 드는 곳입니다. 특히 파도가 높고 센 날 가는 걸 좋아해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고 멈추기 좋거든요. 아, 이번에는 태어나 처음 돈을 내고 큰 초를 사, 소원을 쓰고 불을 붙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전 종교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참 이상한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돈을 내고 소원을 빈다니. 그런데 태풍이가 태어난 후 종종 소원을 빕니다. 소원이라고 해도 특별할 게 없는데 말이죠. 이제 태풍이도 ‘기도’와 ‘소원’이라는 단어와 기도할 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거면 촛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아무튼 태풍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내년쯤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전혀 용기가 없어요. (웃음)
그리고 저 역시 아사장님처럼 아주 가끔 태풍이와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태풍이가 태어나기 전날까지 일하고, 산후조리원에서 연구논문 교정 볼만큼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던지라, 태교일기와 육아일기를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그런 일기를 빼곡히 쓴 걸 보면 질투가 나더군요. 자책도 조금 했습니다. 나름 글을 쓰며 산다는 나인데 이렇게 중요한 걸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쓰는 글은 조금 다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회복일기’라고 해야 할까요. 저를 회복시키는 일은 딱 두 가지거든요. 글쓰기와 태풍이. (책 읽기와 여행은 다음 순위입니다) 회복은 치유나 위로와는 좀 다릅니다. 그렇다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회복, 본연의 의미도 아니고요. 아마 이 이야긴 어딘가에서 제대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저희가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었지요. 업무와 육아와 방송촬영까지, 바쁘신 아사장님 덕분에 전 이렇게 편지를 쓰고 밀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엔 영화 한 편을 보고 잘 수 있겠어요. 그럼 이번 주 토요일, 어마어마 마켓에서 뵙겠습니다.
구선아 드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을 좋아합니다. 사실 어려워서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습니다. 오래전 『사랑의 기술』을 읽었고, 이 책이 출간되고 『사랑의 기술』의 스핀오프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쉽게 말하면 타인의 사랑보단 나와 내 삶을 사랑하라는 책인데요. 위 문장은 정말 오래도록 뚫어질듯 본 문장입니다. 제 책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에 저자 사인할 때 대부분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완벽한 삶입니다’라고 씁니다. 이번 『일상생활자의 작가되는 법』에서 고수리 작가 편 리드 글에서도 산다, 살아간다, 보다 살아낸다 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밝혔고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로 읽힐 것입니다.
좋아하는 그림책 베스트 10안에 드는 책입니다. 지옥과 죽음이란 단어를 쓰며 제일 먼저 생각난 책인데요. ‘죽음’을 매우 철학적으로 그려냅니다. “죽는 게 뭐야? 죽으면 어떻게 돼?” 그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조금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책인데요.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하고,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임을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가 ‘죽음’ 자체인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과 용기가 돋보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이 보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