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구선아
출판사 | 테오리아
출간일 | 2021.07.20
페이지 | 192
ISBN | 9791187789321
한 줄도 좋다, 그림책
– 여기 다정한 인사가 있습니다
그림 없는 그림책
그림책이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는 건 아무래도 ‘그림’이 있어서일 것이다. 책은 책인데 그림이 중요한 책이 그림책이니까.
그렇다면 그림책의 이야기를 눈을 감고 듣는다면 우리는 그림책의 아름다움과 위로를 느끼지 못할까? 그렇지는 않을 거 같다. 그림책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한 줄의 ‘시’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림 없는 그림책’도 그만의 울림이 있다.
그림책 속 문장 하나
그림책 독서 에세이 《한 줄도 좋다, 그림책-여기 다정한 인사가 있습니다》는 작가가 읽은 그림책의 글 속에서 특별히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 한 줄을 뽑아 그 한 줄을 실마리로 그림책 속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 세상 그리고 그림책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매일 읽고 쓰는 사람이 된 구선아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나’의 삶과 ‘세상’ 일을 돌아본다. 돌아보고 깨닫고 움직이려 애쓴다.
모든 불행이 나를 스친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고, 우연히 찾아온 작은 불행들에 불안해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작가에게 옮겨 받은 불행을 대신 이겨보겠다는 선배의 말은 같은 양의 불행도 무게는 같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고, 작가는 생각한다. 모든 행운이 나만 비켜갈 리도 없다고.
작가는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었지만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노래도, 그림도, 수학도 잘하지 못했고, 친구를 잘 사귀지도 잘 웃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나만 가진 특별한 걸 찾는다. 작가는 재밌겠다고 여겨지는 일은 미루지 않고 지금 시작한다. 해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조금의 특별한 능력은 나 혼자 잘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내가 헤매면 찾아주고 왜 내가 헤매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같이 걱정해 줄 사람이 있어 가능한 능력이다.
유년 시절을 추억하면 언제 무엇을 누구와 함께했는지보다 먼저 장소가 떠오른다. 놀이터에서 철봉을 하며 해 질 녘까지 놀던 기억은 어른이 되어도 오래도록 남는다. 그러나 한국의 대도시 특히나 서울은 개인의 장소기억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기 어렵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울은 매년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친구와도 같은, 나를 절대적으로 환대해주는 어린 시절의 공간이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한다.
세상엔 노오오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작가는, 왜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이 있는지 고민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건 사회 시스템이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이미 무너진 이 사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 괜찮아질까, 라고 묻는다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회만이라도 되어 주었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그림책 속 ‘글’에 조금 더 마음을 주는 것이, 그림에 가려 놓쳤을지도 모를 그림책의 말을 더 잘 듣는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다. 작가가 제안하는 울림 있는 문장 한 줄과 함께, 나와 세상 그리고 그림책과 다정한 인사를 나눠도 좋을 것이다.
1부 나
행운이 나만 비켜 갈 리도 없지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이토록 손을 놓지 않는 사랑 《100 인생 그림책》
무엇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가시 끝에서 꽃이 핀다 《나의 가시》
온 세상으로의 여행 《토요일의 기차》
꿈과 같은 인생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가장 멋진 날은 바로 오늘 《이렇게 멋진 날》
책과 함께 나의 삶으로 《사랑스러운 나의 책》
나에게 특별한 나의 보물 《무민의 특별한 보물》
살면서 기다리는 것들 《RAIN: 비 내리는 날의 기적》
문득, 다시, 봄이다 《다시 봄 그리고 벤》
신기한 힘을 가진 첫눈 《눈의 시》
2부 세상
사라지는 절대적 환대의 공간 《마음의 지도》
순서와 순위와 등수 《3초 다이빙》
엄마, 아내가 아닌 ‘자신’으로 《엄마 셋 도시락 셋》
익숙하면서 새로운 맛을 찾아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는 없어!》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아파트》
깨지 말아야 할 유리창은 있다 《앵그리맨》
오늘의 기쁨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노란 안전모를 쓴 청년들 《선아》
열심히 살아도 될까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내 옆에 와 있는 죽음 《너무 울지 말아라》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나톨의 작은 냄비》
달이 사라지기 전에 《달 샤베트》
책 속으로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어쩌면 오늘 나에게 올지 모를 작은 행운을. 모든 행운이 나만 비켜갈 리도 없지 않은가.
— p.19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다짐한다. 그 모든 순간 내가 함께할 순 없겠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손을 놓지 않겠다고.
— p.26
선인장은 가시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시 끝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다. 나도 당신도 아직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했다.
— p.41
기다림은 쉼표야. 우린 아주 천천히 가장 좋은 일들로 가는 중이야.
— p.78
난 상처 있는 삶을 살며 유명한 글 쓰는 사람보다 평온한 삶을 사는 평범한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 평범한 삶 안에서 봄을 기다리고, 봄을 보내고, 또다시 봄을 기다리면서.
— p.87
나를 환대해주는 장소가 있다는 건 무척이나 위로되는 일이다. 오래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 p.102
나의 글쓰기는 누군가를 이기는 글쓰기가 아니다. 휘둘리지 않고 나아가는 글쓰기다. 비록 남들의 순위 안에서 잘하는 글쓰기는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충분하다.
— p.109
누군가의 어깨에 매달려 가지 말자.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한 명의 희생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 p.117
그래도 희망해 본다. 어른의 힘으로 아이의 유리창을 깨지 않는 세상을. 다만 이것만이라도. 단지 이것만이라도.
— p.141
삶의 시작도 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자꾸만 내던져지는 죽음을 볼 때마다 인간의 나태와 과욕과 무지와 이기와 불법과 무책임이 삶의 시작과 끝을 바꾼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그냥 자연의, 시간의 순리로 마주하는 죽음이기를.
— p.171
우리는 저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냄비를 달고 있다. 손목에 발목에 등에 매달린 냄비는 댕그랑 소리를 내며 거추장스럽게 움직인다. 때론 갑자기 냄비가 생기고 누군가 냄비를 달아주기도 한다.
— p. 178